작성자의 책임
문제는 이런 오류가 AI 기획서 특유의 자신감 있는 문체에 묻혀 쉽게 걸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읽는 사람도, 쓴 사람도 그냥 넘어가기 쉽다. 그렇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AI가 틀렸다고 AI 회사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기획서에 이름을 올린 사람, 최종적으로 제출한 사람이 그 내용에 대한 책임을 진다.
Expert
정지우
문화평론가 · 변호사 · 작가
문화평론가 겸 변호사입니다. <AI, 글쓰기, 저작권>,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 등 다양한 책을 집필하며 기술과 인간, 법의 경계에서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즘 직장에서 챗GPT 없이 기획서를 쓰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다. 초안 작성은 물론이고, 시장 분석 자료 정리, 경쟁사 비교, 심지어 기획의 방향성과 아이디어 자체까지 AI에게 먼저 물어보는 일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심지어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AI한테 초안 교정교열은 시켜보았냐, AI가 제시하는 아이디어들도 검토해봤냐, 라고 묻기도 한다.
회의실에서 챗GPT한테 물어봤더니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던데요, 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AI가 단순한 글쓰기 도구를 넘어, 기획의 파트너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있다. AI가 함께 만들어낸 기획서의 법적 권리가 어떻게 되는지다.
1. 인공지능이 쓴 기획서,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나
우선 저작권법의 기본 원칙부터 짚어보자.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한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의'와 '표현한'이라는 부분이다. AI가 생성한 것을 인간의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기에, AI 생성물은 원칙적으로 저작권이 없다. 인간이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하더라도, 인간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아이디어 제공에 불과하다.
저작권법은 아이디어 자체를 보호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인간이 구체적으로 표현한 경우에만 권리를 부여한다(이를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이라 한다). 즉, 챗GPT가 아무리 그럴싸한 문장을 뽑아냈더라도, 그 표현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AI인 이상 저작권은 발생하지 않는다.
창작적 개입에 따른 저작권 인정
다만, AI가 만든 기획서라 하더라도, 그 위에 인간이 수정, 보완, 편집 등을 하여 창작적으로 개입하였다면, 인간이 개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인정된다. 그러므로 기획서의 저작권을 온전히 확보하고 싶다면, AI 생성물을 그대로 쓸 게 아니라 충분히 인간의 안목으로 개입하여 수정 및 편집 등을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인간이 개입한 부분에 관해 어느 정도 증거를 남김으로써, 효과적으로 권리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프롬프트 입력만으로는 부족: 정교한 지시어를 넣었더라도 법은 이를 '아이디어 제공'으로만 간주합니다.
인간의 창작적 개입 필수: AI의 초안 위에 인간이 직접 수정, 보완, 편집을 거쳤다면 그 개입된 부분만큼은 저작권이 인정됩니다.
권리 확보 전략: 비즈니스 자산으로서 기획서를 보호받고 싶다면, 인간의 전문적인 안목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2. 기획서의 아이디어는 누구의 것일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기획서의 진짜 핵심은 문장 표현이 아니라 아이디어 그 자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시장을 공략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지, 어떤 차별점을 내세울 것인지 등 기획서의 가치는 바로 이 아이디어에 있다.
저작권법은 AI 여부와 무관하게, 아이디어 자체를 보호하지 않는다. 인간이 직접 쓴 기획서라 해도 마찬가지다. 다른 회사의 스파이가 기획서 안의 아이디어를 슬쩍 가져다 다시 쓴다면, 저작권법만으로는 막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획서 아이디어는 법적으로 전혀 보호받을 수 없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여기에서는 저작권법이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이 개입할 수 있다.
**부정경쟁방지법이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물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즉,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들어낸 기획 아이디어라면, 저작권법이 아닌 부정경쟁방지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나아가 회사의 아이디어는 영업비밀 등에도 해당할 수 있으므로, 회사 내부에서 만들어진 기획서의 아이디어는 저작권 여부와 무관하게 보안상 취급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AI를 활용하여 창출한 아이디어라도, 여러 의사결정을 통해 충분한 투자와 노력이 투자되었다면, 고유한 회사의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저작권 여부를 넘어 회사의 자산으로서 여러 아이디어에 대한 법적 권리에 대해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3. AI가 써주는 기획서, 얼마나 믿을 수 있나
AI 기획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 현상)입니다. AI는 때때로 존재하지 않는 통계나 왜곡된 시장 분석 자료를 마치 사실인 양 확신에 찬 어조로 제시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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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의 안목과 검증의 역할
결국 AI 기획서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검증이 필수다. 모든 수치와 통계는 원문 출처를 직접 열어 확인해야 한다. AI에게 출처를 요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출처가 제시됐더라도 해당 링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 안에 해당 내용이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추정하지 말고 확실한 정보만 쓸 것, 출처가 없는 문장은 제거할 것이라는 조건을 프롬프트 단계에서부터 명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무리 AI가 편리한 도구라 해도, 최종 판단과 검증의 몫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기획서에 서명하는 순간, 그 내용의 진실 여부는 온전히 작성자의 책임이 된다. 결국 AI를 활용한 기획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그에 따른 각종 리스크도 함께 넓어질 수 있다. 효율성에 안도하기 보다는 모든 일이 효율적이 될수록 인간의 안목과 검증, 리스크 관리의 역할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Writer. 정지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