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카피라이팅이 못 쓰는 글, 29CM 카피라이터가 말하는 경험의 디테일
Expert
이유미
카피라이터, 작가
문장에 밑줄을 긋고, 일상의 생각을 글로 옮깁니다.
책을 사랑하는 카피라이터이자 작가로, 책방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서로 <오늘로 쓴 카피 오늘도 쓴 카피>, <카피 쓰는 법>, <편애하는 문장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등이 있습니다.
AI가 쓸 수 없는 글이 있다
29CM 카피라이터의 디테일 글쓰기
김치 국물 묻은 계란말이를 먹는 경험
새 원고를 마주하고도 선뜻 첫 문장을 떼지 못할 때, 나는 의례적으로 이메일함을 뒤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체크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그냥 들어가 보는 거다. 스마트폰을 꺼내 SNS를 훑는 것은 너무 흔한 일상이고, 이메일 체크는 도피이자 탐색이다. 그러다 흥미로운 제목 하나가 눈에 꽂혔다.
AI 디톡스, 지옥을 보았다. 한겨레에서 발행하는 메일 서비스 중 한 꼭지의 타이틀이었다. 클릭하지 않아도 대강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갔다. 그런 면에서 잘 지은 제목. 글이 안 써질 땐 남의 글이라도 읽는 게 도움이 되기에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내 예상대로, 일주일간 자발적으로 AI를 멀리한 대학생의 지옥 같은 체험기였다. 글쓰기에서 AI가 당연한 상수가 되어버린 세대에게 챗GPT나 제미나이 없이 문장을 짓는 것은 고역이었을 테다. 흥미로운 지점은 고민 상담이었다. 자신에 대해 모든 걸 기억하고 있는 AI에겐 앞뒤 사정을 생략해도 됐지만, 친구에겐 사소한 것부터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 다시 말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감정이 정리되는 경험을 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나 또한 일을 할 때 AI를 적극적으로 쓴다. 다만 아직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깊은 고민까지 나누지는 않는다. 신뢰의 문제라기보다는 경험의 부재다. 나에겐 여전히 독서와 같은 전통적인 방식이 더 익숙하기 때문. 사실 2~3년 전 처음 챗GPT를 마주했을 땐 실망이 컸다. 기대 이하의 결과물에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최근 애가 부쩍 똑똑해졌다는 말에 다시 써보고는 깜짝 놀랐다. 질문의 기술이 늘어난 덕도 있겠지만, 실력 자체가 월등해졌다.
이제 AI는 혼자 작업하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인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조수이자 동료이다. 자칫 틀에 박힌 문장이나 쓰던 단어만 반복하기 쉬운 나에게 이보다 좋은 자극제는 없다. 카피를 쓸 때 나는 먼저 1차 안을 작성한 뒤 AI에게 의견을 묻거나 워싱을 맡겨본다. 이때 내가 원하는 바를 꼼꼼히 담은 질문지를 던지는 것은 필수다. 몇 차례 합을 맞추다 보면 녀석은 내 의도를 기억하고 알아서 처리한다. 나의 결을 맞추기 위해 내 책을 읽게 하거나 카피라이터 이유미에 대해 조사시키기도 했다. 기특하게도 녀석은 수시로 요구하는 질문에 어떻게든 맞추려 애쓰며 점점 내 문체와 닮아갔다.
그럼에도 AI를 쓰면 쓸수록 모든 걸 맡길 수 없다는 확신은 점차 선명해졌다. 동시에 내가 앞으로 어떤 부분을 더 키워야 할지도 분명해졌다. AI가 원고에 참기름을 바른 듯 매끄러운 문장을 뽑아내는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끔 내가 떠올리지 못한 단어를 툭 던져주며 사고를 환기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바로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기도 했다.
이미 답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경험이다. 경험이 녹아든 글이 왜 중요할까? 사람들은 그 날것의 경험에서 공감을 느끼고, 그 공감은 비로소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김치 국물 묻은 계란말이, 그 감각의 디테일
며칠 전 정이현 작가의 최근작 노피플존에서 한 문장을 읽었다.
종종 내가 칸이 나뉘지 않은 도시락 반찬통에 담긴 계란말이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반찬통의 뚜껑을 열어보면 배추김치와 감자조림과 계란말이가 뒤섞인 채 서로에게 스며든 상태. 김치 양념이 묻은 계란말이를 그대로 먹어야 하는 이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과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나는 김치 국물이 묻은 계란말이를 직접 먹어봤다. 그 묘한 눅눅함과 양념이 뒤섞인 맛을 모르는 AI는 진짜 경험이 담긴 이런 글을 절대 쓰지 못할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소설에 국한된 다소 억지스러운 비유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줄 메시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카피라이터의 세계에서도 이 법칙은 유효하다. 타깃의 내밀한 감정을 이끌어낼 진짜 한 줄이 없다면, 제아무리 매끄러운 카피라도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 한 줄은 진짜 경험에서 나온다.
경험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이다.
AI가 글을 매끄럽게 다듬어 줄진 몰라도 그 안에 살아있는 경험의 결을 담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AI도 경험을 흉내 낸 글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쓰여 이미 데이터가 되어버린 문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새로이 경험하고, 그 사소한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그때의 감정을 기억해 글로 남겨놓아야 한다.
잊지 말자. 김치 국물이 묻은 계란말이를 기꺼이 삼키는 그 구체적인 삶의 순간들이야말로 AI는 절대 쓸 수 없고 오직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단 한 끗 차이가 될 것이다.
Writer. 이유미 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