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t
안혜정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연구조교수
실패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문화와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실패박람회 ‘실패 의제 연구’와 재도전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현재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에서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서로 《실패 빼앗는 사회》, 《K스타트업, 실패가 알려주는 성공의 길》(공저)이 있습니다.
'결과로서의 실패'와 '시도로서의 실패'를 구분할 때, 실패 경험은 비로소 조직의 지식이 된다
이 글의 핵심 혁신을 위해 실패를 용인하자는 말은 규칙 위반을 눈감아 주자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과정의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그 경험을 다음 시도로 잇자는 뜻이다. 조직이 시도로부터 배우려면 결과의 성패를 판정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실패를 묻는 언어, 경험을 되짚는 업무 프로세스, 드러내도 불이익이 없다는 구성원의 믿음을 함께 갖춰야 한다.
실패를 용인한다는 말의 의미
"혁신을 위해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겠다." 기업 대표의 신년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그러나 작은 실수 하나가 가동 중단과 막대한 손실로 이어지는 생산 현장, 실패가 곧 징계나 인사고과의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문화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말은 종종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실패를 용인하게 되면 오히려 일을 소홀히 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겠냐는 반문이 뒤따르기도 한다.
이 반문에 답하려면, 먼저 실패가 발생하는 맥락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절차와 기준이 확립되어 있고, 일의 과정과 결과를 비교적 예측할 수 있는 업무에서는 합의된 방법을 충실히 따르고 오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을 탐색하는 일에서는 아무리 충분히 준비해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마주하기 마련이다. 직접 시도해본 후에야 처음의 가정과 예측이 잘못됐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혁신을 위해 실패를 용인하자는 말은 후자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규칙을 어겨 발생한 사고를 눈감아 주자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는 예상과 다른 결과와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시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에 가깝다.
결과로서의 실패, 시도로서의 실패
이러한 맥락에서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조직의 자산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를 격려하려던 활동이 '실패'라는 이름의 성과공유회가 되거나, 원인과 대책이 이미 알려진 사례를 모으는 데 그치기도 한다.
최근 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0년간 조직 내에서 일어난 프로젝트 실패 사례를 모아 보니, 과거에 뛰어난 실적으로 성공 사례라 불리던 프로젝트가 지금은 조직의 골칫거리가 되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당시에는 별 반응을 얻지 못해 실패 사례로 꼽혔던 프로젝트가 최근 갑자기 고객들의 호응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프로젝트라도 언제 판단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평가는 뒤바뀔 수 있다.
같은 프로젝트도 어느 시점에 판단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뒤바뀐 셈이다. 이는 특정 시점의 결과만으로 성공과 실패를 단정 짓고, 그 판정을 중심으로 교훈을 찾는 접근이 얼마나 허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사례 찾기에만 집중한다면, 우리가 시도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교훈을 상당 부분 놓치게 된다.
여기서 에디슨이 천 번의 실패 끝에 전구를 발명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그 실험들은 실패한 결과의 반복이었을까,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를 확인해나간 시도였을까. 각각의 실험은 원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다음 시도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과정일 수 있다. 우리가 실패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부르는 경험 중 상당수가 사실은 이런 성격을 띤다.
이런 의미에서 '결과로서의 실패'와 '시도로서의 실패'를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전자가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성패를 판단하는 관점이라면, 후자는 시도하는 과정에서 기대와 실제가 어떻게 달랐으며 그 차이로 무엇을 알게 됐는지 살피는 관점이다.
구분 | 결과로서의 실패 | 시도로서의 실패 |
|---|---|---|
판단 기준 | 목표를 달성했는가 | 기대와 실제가 어떻게 달랐는가 |
주로 묻는 것 | 성공인가, 실패인가 | 그 차이로 무엇을 알게 됐는가 |
학습의 초점 | 특정 시점의 결과 판정 | 시도의 과정과 내용 |
조직이 얻는 것 | 성패 목록 | 다음 시도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 |
두 관점은 같은 경험에 모두 적용할 수 있지만, 학습이 목적이라면 결과의 판정을 넘어 시도의 내용을 들여다봐야 한다. 시도하지 않았다면 알기 어려웠을 지식과 정보를 발견하는 데에 시행착오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 물어야 할 것은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이든 간에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다음에는 무엇을 달리할 수 있는지다.
조직이 시도로부터 배우려면
시도의 과정에 주목한다는 취지가 실제 조직의 활동에 반영되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다음 세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1. '실패'를 묻지 말고 '예상과 달랐던 지점'을 물어라
첫째, 실패 경험을 공유하도록 요청하는 언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설적이지만 시도의 과정에 주목하게 하려면 '실패'라는 말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편이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실패라는 말에서 잘못된 결과나 자신의 부족함을 떠올리기 쉽다.
실패를 공유하라는 요청이 평가에 대한 우려와 맞물리면, 구성원은 경험을 돌아보기보다 자신을 방어하거나, 드러내도 부담이 적은 이야기만 고르게 된다. 그러므로 실패 사례를 요청하기보다 '예상과 달랐던 지점', '중간 점검에서 발견한 것', '다음에는 다르게 해 볼 것'을 묻는 편이 시도의 경험을 돌아보는 데 더 유용하다.
2.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에 회고를 심어라
둘째, 언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의 경험이 조직의 지식으로 전환되려면, 그 관찰과 공유가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 안에 자리 잡아야 한다. 별도의 '실패 공유의 날'을 만드는 것보다, 프로젝트 혹은 팀 단위에서 일 과정의 경험을 정례적으로 되짚는 회고나 리뷰 미팅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이때 업무의 특성에 따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경험과 배우는 방식도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는 업무에서는 고객에 관한 가정을 검토하는 것이, 안전이나 보안과 같은 업무에서는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재발을 막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3. 시행착오를 드러내도 불이익이 없다는 믿음을 만들어라
셋째, 시행착오를 드러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구성원의 믿음이 필요하다. 각자의 경험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판단의 한계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실수를 드러내는 일이 곧바로 고과의 하락으로 이어진다면 충분한 공유를 기대하기 어렵다.
실패를 용인한다는 선언, 일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성과 보고와 인사평가에서는 성공만 인정하면서 실패를 공유하라고 요구하면 구성원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구성원들의 경험 속에서 변화와 혁신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그 경험을 돌아보고 서로의 해석을 나누며 다음 판단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용인한다는 선언이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일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때다.
이 글이 답하는 네 가지 질문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문화란 무엇인가?
규칙을 어겨 발생한 사고를 눈감아 주는 문화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예상과 다른 결과와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시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말한다.
실패를 용인하면 책임 회피가 늘어나지 않나?
실패가 발생하는 맥락을 구분하면 답이 보인다. 절차와 기준이 확립된 업무에서는 합의된 방법을 충실히 따르고 오류를 줄이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 실패를 용인한다는 말은 충분히 준비해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탐색적 업무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결과로서의 실패'와 '시도로서의 실패'는 어떻게 다른가?
결과로서의 실패는 목표 달성 여부로 성패를 판단하는 관점이다. 시도로서의 실패는 시도 과정에서 기대와 실제가 어떻게 달랐고, 그 차이로 무엇을 알게 됐는지 살피는 관점이다. 조직이 학습을 원한다면 결과 판정을 넘어 시도의 내용을 들여다봐야 한다.
실패 공유 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세 가지가 필요하다. '실패' 대신 '예상과 달랐던 지점'을 묻는 언어, 일회성 행사가 아닌 정례 회고와 리뷰 미팅 같은 업무 프로세스, 그리고 시행착오를 드러내도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구성원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