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t
신경원
작가·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기업 강의와 코칭으로 신뢰를 쌓고 성과를 만드는 대화법을 전합니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CS팀장과 KT 강북 고객센터장을 역임한 통하는클라스 대표입니다. 『내 말이 곧 커리어가 된다』와 『대화의 법칙』의 저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 말’로 바꾸는 법
나는 직장생활을 할 때 ‘쌈닭’이었다. 다른 팀과 업무 경계가 애매하면 “이건 그쪽 팀 업무인데 왜 우리 팀한테 미루세요?”라고 따졌고, 상사가 말을 번복해놓고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말하면 불만을 드러내며 반박했다.
당시에는 맞는 말을 분명하게 하는 사람이 일을 잘하고 신뢰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내가 옳다고 믿었다.
맞는 말을 했는데, 일은 풀리지 않았다
한 번은 팀장과 임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고객 불만이 반복되던 서비스 정책을 바꾸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현장에서 고객의 불만을 계속 감당하던 우리 팀에는 꽤 시급한 문제였다.
그런데 한 임원이 그 정책을 바꿀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반박했다. “이사님이 현실을 모르셔서 그렇습니다”라며 내 주장이 왜 옳은지를 설명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 임원을 설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다. 우리 팀은 정책이 바뀔 때까지 몇 달 동안 같은 고객 불만을 계속 감당해야 했다.
당시에는 그 임원이 유연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몇 달 뒤 정책이 바뀌었으니 문제 제기 자체가 틀렸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일이 풀리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신뢰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직장에서는 무조건 말을 참는 것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구분하는 것이다.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내 입장에서는 꼭 해야 할 말이지만, 정작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 말이 꼭 해야 할 말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 신뢰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해줄 때 시작된다. 문제가 생기면 미리 알리고, 애매한 것은 확인하고, 어려운 것은 조율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일하면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신뢰를 쌓는 ‘해야 할 말’은 어떻게 꺼내야 할까? 신뢰가 흔들리기 쉬운 순간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첫째, 힘들다고 호소하기보다 우선순위를 확인한다
마감 업무가 몰려 있는데 추가 업무가 주어지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하고 싶은 말: “저 너무 바쁜데요. 이번 주 마감이 2건이라 너무 힘들어요.”
해야 할 말: “A와 B 업무가 이번 주 마감입니다. C 업무가 추가되면 B는 다음 주로 넘어가게 됩니다. C를 우선할까요, B 일정을 유지할까요?”
첫 번째 말처럼 이야기하면 힘든 상황은 전달되지만, 무엇을 조정해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반면 두 번째 말은 내가 처한 상황을 알리고, 상대가 판단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힘든 마음을 그대로 쏟기보다 ‘일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감정 호소는 내 어려움을 알리지만, 우선순위 확인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결정하게 한다.
둘째, 역할의 경계보다 공동의 목표를 먼저 확인한다
내 담당이 아닌 업무를 맡으라는 지시를 받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하고 싶은 말: “제 업무도 아닌데 왜 제가 해야 하나요? 제 업무도 많은데요.”
해야 할 말: “이 업무는 ○○팀 담당입니다. 혹시 제가 맡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만약 제가 지원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범위를 먼저 정리했으면 합니다.”
내 담당이 아닌 업무까지 맡으라는 말을 들으면 억울할 수 있다. 이때 ‘왜 내가?’에 머물면 ‘내 일, 네 일’을 따지게 되지만, ‘왜 이 일이 필요한가?’를 보면 조율할 여지가 생긴다. 이유를 알면 역할과 범위를 조율하기도 쉬워진다.
직장에서는 역할의 경계가 늘 선명하지 않다. 내 업무만 고집하기보다 공동의 목표를 보고 서로의 역할을 조율하는 힘이 필요하다.
셋째, 누구 잘못인지 따지기보다 앞으로의 기준을 확인한다
상사가 “종이로 출력해서 보고하지 말고 이메일로 보고하라”고 했다가, 또다시 “왜 이메일로만 보고하느냐”고 화를 내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하고 싶은 말: “팀장님이 지난번에 분명히 이메일로 보고하라고 하셨잖아요.”
해야 할 말: “지난번에 이메일로 보고하라고 말씀하셔서 그렇게 진행했습니다. 앞으로 출력해서 보고드리면 될까요?”
상대가 말을 바꾸면서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말하면 억울하다. 하지만 첫 번째 말처럼 이야기하면 ‘누가 잘못했는가’에 머물게 된다. 필요한 사실은 말하되, 앞으로의 기준을 확인해야 한다.
반박은 과거의 잘못에 머물고, 기준 확인은 앞으로의 진행 방식을 분명하게 한다.
조율에도 선은 있다
물론 조율에도 선은 있다. 한두 번의 예외는 협업일 수 있지만, 역할 밖의 업무나 번복되는 지시가 반복된다면 더 이상 ‘말을 잘해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이때는 어디까지가 내 업무인지, 누가 어떤 역할과 책임을 맡아야 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다만 사람을 탓하기보다 반복된 상황과 업무에 미친 영향을 사실 중심으로 말해야 한다. 필요하면 상급자나 관련 부서에 기준을 다시 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해야 할 말’은 필요한 경계를 분명히 하되, 문제를 풀어가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불편한 말을 꺼내야 할 때도 있다. 불편한 말을 피한다고 신뢰가 쌓이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관계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해온 경험이 결국 신뢰를 만든다.
‘이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숨기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방법을 찾는다.’
‘애매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확인한다.’
말하기 전, 두 가지를 자문해보자
‘하고 싶은 말’은 순간의 감정이나 판단에 이끌려 먼저 떠오르는 말이고, ‘해야 할 말’은 관계와 문제 해결을 함께 고려해 선택하는 말이다. 직장에서 말하기 전 자문해보자.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그 둘을 구분하기 시작하는 순간, 말투를 넘어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리고 신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Writer. 신경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