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t
이상원
서울대학교 학부대학 강의교수
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을 전합니다.
서울대학교 학부생을 대상으로 글쓰기와 말하기 교양강좌를 운영합니다. 『서울대인문학글쓰기 강의』와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를 썼으며,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레베카』,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을 번역했습니다.
상대의 기대를 읽고, 핵심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생활 속 글쓰기
한 공간에 함께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다. 그걸 도와주는 소통의 도구가 여럿이다. 매일 내가 사용하는 도구들을 떠올리면 카카오톡, 이메일, 문자메시지와 전화 순서인 것 같다.
흥미롭게도 내가 살아오면서 이 도구들을 만나온 순서는 지금의 사용 빈도와는 다르다. 지금 제일 많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은 15년쯤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내 삶에 들어온 소통 도구다.
전화를 걸기 전에는 준비가 필요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 등장한 원격 소통 도구는 전화였다. 집과 학교, 동네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게 전부였던 꼬마 시절을 거쳐 가족 공용의 집 전화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안녕하세요? 연희 친구 상원인데요, 연희가 집에 있나요?”라고 연락할 수 있는 신세계였다. 전화를 걸려면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어떤 순서로 어떤 말을 할지 머릿속으로 미리 정리한 다음에 다이얼을 돌리곤 했다.
특히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야 할 때처럼 깍듯하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 경우가 어려웠다. 당황해서 말을 더듬고 존대를 엉뚱하게 붙이기도 했다.
이메일에서 카카오톡까지, 달라진 소통 방식
전화의 시대가 한참 이어진 후 내게 이메일이 등장했다. 1997년, 통번역대학원 졸업시험이 끝난 후 친구들과 학교 전산실에서 난생처음으로 이메일 아이디를 만들며 신기해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팩스나 우편, 오토바이 배달로 주고받던 통번역 업무 관련 문서를 컴퓨터로 손쉽게 전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대혁신이었다. 번역문을 오토바이 배달로 보냈다가 빗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종이가 쏟아지고 다 젖어버려 낭패를 보았다는 선배의 경험담은 전설로 남았다.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된 2000년대에는 문자메시지가 중요한 소통 도구로 등극했다. 즉각 받아야 한다는 전화의 부담도, 컴퓨터로 로그인해야 하는 이메일의 귀찮음도 해결해주는 편리한 도구였다. 한편 책 번역 일을 하며 출판사와 주고받는 연락은 거의 모두 이메일을 통해 이루어졌다.
내가 카카오톡을 쓰기 시작한 것은 스마트폰으로 갈아탄 뒤였다. 나는 구식 휴대전화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다가 2012년쯤 되어서야 뒤늦게 스마트폰으로 갈아탔다. 친구들이 제발 전화기를 바꿔서 카카오톡을 사용하라고, 나한테만 따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게 힘들다고 아우성을 쳤던 것이다.
처음 카카오톡에 들어가 단체 대화방을 경험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각자가 하고 싶은 말을 순서 없이 올리는 바람에 대화가 연결되지 않았고, ‘ㅋㅋ’나 ‘ㅎ’로 반응이 끝나버리는 것도 영 낯설었다. 당황하는 내게 친구들은 ‘괜찮아.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톡을 보내주었다.
도구마다 다른 공식성과 예의
이들 소통 도구의 공식성 혹은 예의 바름에 순위를 매겨보자면, 내 경험에서는 각 도구가 내 인생에 출현한 순서를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존경을 표해야 할 상대에게는 전화를 드리고, 가장 편한 상대에게는 톡을 보내는 식이다.
적절한 시간을 선택해 전화를 걸고 통화하는 것이 제일 에너지가 많이 들다 보니, 이게 가장 예의 바른 소통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예고 없이 불쑥 전화하는 행동이 무례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먼저 문자메시지를 보내 통화가 가능한지 확인하고 전화를 드리는 경우도 있다.
한편 업무 연락에는 주로 이메일이 사용된다. 업무 관계에서는 전화보다 이메일이 더 상대를 존중하는 도구로 여겨지는 것 같다. 내게 카카오톡은 공식성이 가장 낮은 도구로 출발했지만, 여러 명과 효율적으로 함께 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점점 업무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공식성과 사용 영역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럼에도 모든 도구를 관통하는 소통의 기본 원칙은 존재한다.
첫째, 상대가 기대하는 바를 맞춘다
상대가 소통에서 예상하고 기대하는 바를 맞춰야 한다. 우선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히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상대가 내 정체를 파악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말이다.
예를 들어 내게는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는 ○○○입니다.’보다는 ‘글쓰기 수업 019 강좌를 수강하는 ○○○입니다.’라고 시작하는 이메일이 훨씬 고맙다. 여러 수업 중 어느 반인지 찾아야 할 일을 덜어주니 말이다.
또한 도구마다 기대되는 소통 특성이 무엇인지 살필 필요가 있다. 문자메시지를 많이 쓰던 시절, 학생에게 답신했더니 곧바로 ‘선생님, 혹시 제가 뭐 실수해서 기분 상하셨나요?’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던 일이 있다. ‘^^’나 ‘~~’ 등의 양념을 기대했다는 걸 내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탓이었다.
둘째, 핵심을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어느 소통 도구에서든 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전화라면 통화를 마치기 전에 핵심 내용을 한 번 더 반복하는 것이 오류를 줄인다.
이메일과 문자, 카톡 등은 내용이 글로 남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무수히 연락이 오가고, 그리하여 알게 모르게 우리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사안별로 번호를 붙이거나, 중요 사항에 밑줄을 긋거나, 핵심을 말미에 다시 정리해주는 등의 배려가 절실하다.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읽는다
전화를 걸기 전에, 이메일과 카카오톡의 ‘보내기’를 누르기 전에 잠시 멈춰서 생각을 정리하고 한 번 더 읽어본다면 소통 문제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이건 말을 내뱉기 전에 속으로 한 번 더 검토해보는 과정과도 동일하다.
글로 보내는 내용은 말로 할 때보다 오해나 착오의 위험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보내는 사람의 실수나 오류를 오래도록 ‘박제’해버린다는 위험도 함께 지닌다.
미래에는 아마도 또 다른 소통 수단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듯 새로운 소통 수단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럼에도 소통의 기본 원칙은 여전하리라 생각한다.
Writer. 이상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