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ecutive Summary
I 시대에 리더의 진짜 경쟁력은 더 많은 업무와 성과를 쥐어짜는 관리가 아니다. 구성원을 셀프리더로 키우고 일에서 의미와 안온감을 느끼게 하는 슈퍼리더십에 달려 있다.
Expert
정태희
대표
HR, 성과관리, OKR, 조직문화 분야의 전문가로, GE Korea와 Continental Korea 등 글로벌 기업의 HR 리더를 거쳐 현재 리박스컨설팅 대표로 인사·조직 혁신을 자문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비즈니스 생태계를 지배해 온 절대 법칙은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였다. 이 냉혹한 명제 앞에서 기업들은 쫓기듯 조직을 개편하고, 앞다투어 신기술을 도입하며, 잠시라도 멈추면 뒤처질까 두려워 끝없는 혁신의 페달을 밟아 왔다. 그렇게 우리는 변동성(Volatile)과 불확실성(Uncertain)으로 대표되는 VUCA의 시대를 통과해 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어느새 한층 더 가혹하고 종잡을 수 없는 BANI(Brittle, Anxious, Non-linear, Incomprehensible)의 세계로 넘어가 버렸다.
단단해 보이던 비즈니스 관행은 작은 충격 한 번에 와르르 부서지고(Brittle), 어제까지 문제없던 관계는 하루 만에 아무 소용이 없어지며(Non-linear), 기존의 상식과 경험치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Incomprehensible) 낯선 상황이 연달아 펼쳐진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의 틈새마다 극도의 불안(Anxious)이 스며들어 우리의 일상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잠식한다.
이런 세상에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일단 해보고 나서 알려줘'라는 맹목적인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이 거대한 혼돈 한복판에서 조직이 흔들리지 않을 닻을 내리고, 사람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시키는 새로운 차원의 리더십이다.
끝없는 혁신을 강요받는 조직은 결국 피로사회(Pivot Fatigue)에 빠진다. 그런데 최근 두 주간 글로벌 HR 현장에서 읽은 리포트와 뉴스는 이 피로가 아주 구체적인 얼굴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가짜노동(fake work), 즉 실제 성과가 아니라 '바빠 보이는 모습'에 에너지를 쏟는 보여주기식 업무의 확산이다.
이 문제의 본질은 게으름이나 비양심적인 마인드가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의 압박에 지친 성실한 사람들이 '일하는 척'을 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오늘은 피로사회가 왜 가짜노동으로 이어지는지 그 연결고리를 짚고, 찰스 만츠와 헨리 심스가 1989년 저서 「SuperLeadership」에서 제시한 슈퍼리더십이 어떻게 조직에 안온감(Stagility)을 되돌려주는지 살펴본다.
노트를 들고 사무실을 무작정 서성이거나, 아무 의미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중요하지 않은 회의를 일부러 요청한다. 여러 글로벌 기업에서 고스트워킹(ghostworking)이라 부르는 이 새로운 업무 현상을 다룬 보도가 잇따른다.
2025년 5월 21일 뉴욕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 1,12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8%가 "정기적으로 일하는 척을 한다"고 답했고 34%는 "가끔 한다"고 응답했다. 수법도 노골적이다.
고스트워킹의 대표 수법 | 응답 비율 |
|---|---|
바빠 보이려고 노트를 들고 사무실을 배회한다 | 23% |
의미 없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 22% |
걸려오지도 않은 전화를 받는 시늉을 한다 | 15% |
실체 없는 회의를 잡는다 | 12% |
자료: Resume Now, Ghostworking Report (2025), 미국 근로자 1,127명 대상 조사
이 현상을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봐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직원의 72%가 보여주기식 생산성(fauxductivity)에 가담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그 비용은 직원 1인당 연간 9,500달러에 달했다. 세대별로는 Z세대가 83%로 가장 높았고, 업종별로는 금융과 교육 부문이 두드러졌다.
문제는 이 현상의 뿌리가 관리자에게 있다는 점이다. 한 조직행동 연구자는 이를 두고 직원이 아니라 관리자의 문제이며, 불공정한 지표를 들이대는 관리자 때문에 직원들이 불공정한 시스템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수단인 AI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킨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2025년 9월 스탠퍼드 연구진과 함께 명명한 워크슬롭(Workslop)이 대표적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속 없는 AI 생성물을 가리킨다.
미국 정규직 직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1%가 지난 한 달간 받은 의미 없는 AI 생성물을 분석하는 데 평균 1시간 56분을 썼고, 1인당 월 186달러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낭비했다. 이를 1만 명 규모 기업으로 환산하면 연간 900만 달러가 넘는 손실이다. 연구진은 이 현상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이자 리더십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더 노골적인 사례가 토큰맥싱(Tokenmaxxing)이다. 2026년 5월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아마존은 개발자 80% 이상이 매주 AI를 사용하도록 목표를 부여하고 토큰 사용량을 사내 리더보드로 추적했다. 그러자 일부 직원은 자신의 순위를 올리려고 사내 AI 에이전트에 불필요한 작업을 시켜 토큰 소비량을 부풀렸다. 메타에서도 구성원이 직접 만든 사내 순위표에서 약 8만 5천 명이 30일간 소비한 토큰이 60조 개를 넘었다.
구분 | 무엇이 벌어졌나 | 조직이 치른 비용 |
|---|---|---|
워크슬롭 | 직원 41%가 무의미한 AI 생성물을 해석하느라 평균 1시간 56분 소모 | 1인당 월 186달러, 1만 명 기업 기준 연 900만 달러 이상 |
토큰맥싱 | 사내 리더보드 순위를 올리려 불필요한 작업으로 토큰 소비량 부풀림 | 지표 신뢰도 붕괴, 아마존은 결국 관행 폐기 |
보여주기식 생산성 | 직원 72%가 가담 경험, Z세대는 83% | 1인당 연 9,500달러 |
측정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지표는 더 이상 좋은 지표가 아니라는 굿하트의 법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결국 아마존은 이 리더보드를 접었고, 경영진은 "그저 AI를 쓰기 위해 AI를 쓰지 말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야 했다.
앞서 살펴본 가짜노동의 그늘에는 늘 새로운 소진이 뒤따른다. 바로 보어아웃(Boreout)이다.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미 없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에 지쳐 가는 만성적 탈진을 뜻한다.
갤럽의 2025년 글로벌 직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직원의 몰입 비율은 2년 연속 하락해 20%로 202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세계 경제에 연간 약 10조 달러의 손실을 안겼다. 특히 관리자의 업무 몰입도는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의미 없는 업무를 관장하는 사람부터 먼저 소진된다는 뜻이다.
갤럽 지표 | 이전 | 2025년 |
|---|---|---|
글로벌 직원 몰입률 | — | 20% (2020년 이후 최저) |
관리자 몰입률 | 31% (2022년) | 22% |
"회사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분명히 안다" 응답 | 56% (2020년) | 46% |
몰입 저하가 세계 경제에 안긴 손실 | — | 연간 약 10조 달러 (세계 GDP의 9%) |
자료: Gallup,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이 보고서는 심리적 안전감을 가로막는 3대 요인으로 워라밸 붕괴, 성과 불안, 불명확한 목표를 지적했다. 목표가 불분명할수록 구성원은 성과를 향한 몰입 대신 일하는 척하는 고스트워킹을 택한다.
많은 조직 전문가가 보어아웃을 두고 워라밸의 문제가 아니라 목표에 대한 조직 설계의 문제라고 규정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리더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찰스 만츠와 헨리 심스가 1989년에 제시한 슈퍼리더십(SuperLeadership)에서 답을 찾는다. 스스로를 이끌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리더십(leading others to lead themselves)이다.
슈퍼리더는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영웅적 리더도, 공포로 복종을 강요하는 스트롱맨도 아니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셀프리더(self-leader)로 키워내는 사람이다. 만츠는 슈퍼리더십의 진정한 효과가 리더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구성원의 성공에 있다고 강조했다.
흥미롭게도 AI 시대의 조직 리더십 담론이 1989년에 나온 슈퍼리더십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실제로 AI는 리더의 역할을 대체하지 못한다. 그러나 리더가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 힘을 쏟고 구성원의 업무를 관리하는 역할을 AI에 맡긴다면, 리더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구성원을 일일이 관리하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는 신뢰 부족이 아니라 소통 부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리더가 AI를 감시 도구에서 떼어내고, 사람을 키우는 데 쓸 시간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슈퍼리더십의 중요한 전제다.
가짜노동은 감시로 없앨 수 없다. 감시가 늘수록 사람들은 더 정교하게 연기할 뿐이다. 슈퍼리더십은 그 악순환을 끊고 감시를 신뢰로, 통제를 자율로 바꾸는 힘을 지닌다.
산출물 개수, 접속 시간, 피드백 속도, 토큰 사용량 같은 손쉬운 대리지표가 오히려 구성원의 고스트워킹을 양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조직이 AI를 감시 도구로 쓰는지, 아니면 구성원의 의사결정과 성장을 돕는 조력자로 쓰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구성원이 조직 안에서 무의미한 일에 지쳐 가는 신호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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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시대에 리더의 진짜 경쟁력은 더 많은 업무와 성과를 쥐어짜는 관리가 아니다. 구성원을 셀프리더로 키우고 일에서 의미와 안온감을 느끼게 하는 슈퍼리더십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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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직의 생산성 지표는 '결과'를 재고 있습니까, '활동량'을 재고 있습니까? 접속 시간과 도구 사용량처럼 측정하기 쉬운 지표가 실제 성과를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세요.
AI 도입 성과를 사용량으로 보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토큰 사용량이나 도입률 대신, 그 사용이 줄여 준 업무 시간과 만들어 낸 의사결정의 질로 지표를 재설계하세요.
구성원이 "회사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습니까? 목표의 명확성은 몰입의 선행 지표입니다. 팀 단위로 직접 물어보고 답변의 편차를 확인하세요.